미국에 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20살짜리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대화나 직장에서 사용하는 대화는 큰 문제 없이 한다. 그 정도면 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깊이 있는 대화다. 내 내면의 이야기를 영어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영화나 문학, 음악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더더욱 그렇다. 관련된 단어와 표현을 알지 못하고, 문화적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눌 때 깊이가 없다. 이건 단지 영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문법, 읽기, 쓰기 등을 공부 해서 집을 짓는데 골격은 만들어 놓고 지친 나머지 인테리어를 다 끝내지 못한 느낌이랄까?
20년이 지나 돌아보니, 이민 생활의 대부분은 학교와 직장에서 보냈다. 취미라고 해봐야 운동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시간을 투자하고 경험한 분야의 대화는 가능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곧 문화다. 나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한국 사람과 결혼했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지내다 보니 영어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미국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라 내가 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영어와 문화적 이해의 발전에 한계를 두고 살아온 결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막 미국에 온 분들 또는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분들 중에 "왜 영어가 늘지 않는지"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몇 가지 유용한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지식의 폭을 넓히자
내가 영어로 대화가 어렵다고 느꼈던 순간들 중 상당수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라기보다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할 말이 없거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그 분야의 배경지식과 단어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관련 단어와 개념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면 그 주제에 관해 대화할 때 훨씬 자신감이 생긴다. 예를 들어, 간호사라면 의학 관련 서적이나 환자와의 소통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미국 간호사가 되고 싶다면 간호학과 환자 케어에 관련된 책뿐만 아니라, 미국 의료 시스템과 문화에 관한 책도 읽어보길 추천한다.
미국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인용되거나 친숙하게 언급되는 고전 문학과 대중적인 작품들 몇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이 작품들은 대화 중에 등장할 수 있는 상징, 명언, 혹은 문화적 배경 지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으니 틈나는 대로 읽어보자.
- To Kill a Mockingbird (앵무새 죽이기): "Don’t judge a man until you’ve walked a mile in his shoes." 같은 표현이 자주 인용됨. 미국 남부의 역사와 인권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
- Of Mice and Men (생쥐와 인간): 미국 대공황 시대의 인간적 고뇌를 묘사.
-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 로맨스와 관련된 대화에서 자주 언급되며,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는 고전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쓰임.
- Harry Potter (해리포터 시리즈): 세대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이야기.
- 1984: "Big Brother is watching you."는 현대 정치와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 기술과 사회적 통제를 다룬 대화에 적합.
- The Catcher in the Rye (호밀밭의 파수꾼): 미국의 젊은이 문화와 관련된 대화에서 유용.
- Little Women (작은 아씨들): 조 마치와 가족 간의 사랑과 독립심에 대한 이야기가 미국 가정 문화와 관련된 대화에서 등장. 여성의 성장과 선택에 대한 논의에 적합한 소재.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문화적 배경을 배워라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영어 속에는 그 사람의 문화와 가치관이 담겨 있다. 따라서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인종, 다른 전공,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왜 그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영어 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해력도 성장한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일하려는 간호사라면, 환자들과의 소통에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디어를 활용하라: TV, 영화, 음악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도구는 TV, 영화, 음악 같은 시청각 자료다. 특히 요즘 사람들이 어떤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유행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면 대화의 폭이 넓어진다.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면 미국 의학 드라마와 영화를 적극 활용해보길 추천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쓰이는 영어 표현과 미국 의료 문화를 배우는 데 매우 유용하다.
추천할 만한 미국 의학 드라마와 영화
- ER (응급실): 의학 드라마의 전설로 불리는 작품.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의료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 대규모 병원의 바쁜 응급실에서 쓰이는 영어 표현, 의료용어, 그리고 환자와 의료진 간의 긴박한 대화를 배울 수 있다. 아직도 간호사와 의사들 사이에서 추천받는 고전적인 드라마.
- New Amsterdam (새로운 암스테르담): 뉴욕의 가장 오래된 공공 병원을 배경으로 의료진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병원 시스템의 문제와 환자 중심의 케어를 강조. 의료진이 환자를 돕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간호사와 의료진 사이의 협력과 환자 소통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 Nurses (간호사들): 캐나다 드라마지만, 미국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작품. 초보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 간호사들의 현실적인 고민, 팀워크, 그리고 환자 케어를 생생히 보여줌. 간호사로서의 직업적 자부심과 도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 The Resident (레지던트): 병원의 이면과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 의사와 간호사들이 직면하는 윤리적 갈등과 환자 케어의 현실적인 측면을 잘 묘사.병원 내에서 팀워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배우기에 적합.
- Chicago Med (시카고 의료): 인기 있는 "시카고 시리즈"의 한 축으로, 병원의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의료진들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겪는 다양한 갈등과 감정을 담아냄. 빠르게 돌아가는 응급 상황에서 나오는 영어 표현과 대화가 인상적이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 Grey’s Anatomy (그레이의 해부학):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의학 드라마 중 하나로, 의료 현장의 긴장감과 인간적인 이야기를 잘 담아낸 작품. 실제 병원에서 쓰이는 영어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 House M.D. (닥터 하우스): 독특한 주인공인 하우스 박사를 중심으로 한 의학 미스터리 드라마. 복잡한 의료 용어와 문제 해결 과정을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
- Scrubs (스크럽스):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인 병원 생활을 다룬 드라마로, 젊은 의사들의 성장기를 통해 병원에서 쓰이는 영어와 유머를 익히기 좋다.
- Patch Adams (패치 아담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환자와의 소통과 인간적인 케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간호사로서 환자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
- The Good Doctor (더 굿 닥터): 자폐증을 가진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미국 의료 시스템과 환자 케어의 다양한 면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이민 생활 20년을 돌아보면서, 나의 영어와 문화적 한계는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꼭 실패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미국 이민 생활에 꼭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가 기대만큼 늘지 않았던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글을 끄적여 보았다.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여러분에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영어는 단순히 언어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책을 읽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미디어를 통해 배우면서 영어와 미국 문화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About 김프로, RN > 김프로의 미국 이민과 간호사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꿀잠과 우리의 심장 (3) | 2024.12.04 |
---|---|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0) | 2024.11.24 |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김프로의 급여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 | 2024.11.20 |
학생 비자로 12년 + 취업 비자로 4년 (2) | 2024.07.16 |
간호사가 꿈이었나요? (0) | 2024.07.13 |